[입법적 시도 - 방송편성규약 제도] - 박용상 변호사

[입법적 시도 - 방송편성규약 제도] - 박용상 변호사
 
한편 방송의 내적 자유를 입법화하려는 노력은 방송노조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방송 3사 노조는 1989년 편성규약 제도와 편성규약 준수위원회제도를 명문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었고, 24) 
 
24)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1989년 10월 12일 개최된 방송제도 및 방송법개정을 위한 공청회에 제출된 방송법 개정시안 제27조 내지 제29조 참조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1999년 7월 방송 3사의 노조는 편성규약 관련조항을 새 방송법에 넣자는 요구를 내걸고 연대파업을 결의하였다. 
 
당시 방송노조는 편성권이 방송 경영자와 종사자에게 공동으로 위탁된 것임을 전제로 현업자와 경영진이 동수로 참여하는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고 편성규약을 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방송의 내적 자유를 법제화하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졌고, 과거 관행화된 권위주의적 방송운영의 실제에 비추어 볼 때 일정한 선에서 기자들의 저널리즘활동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정성논란을 위요한(둘러싼) 혼란상황은 극복될 수 없었다.
 
드디어 2000. 1. 12. 여야 합의 하에 전문 개정된 통합방송법(법률 제6139호)은 내적 자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편성규약제도를 명문화하고 이를 시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통합방송법 제4조는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 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은 그 제정 주체, 절차, 내용 및 효력 등 여러 사항에 관하여 명백한 조항을 두지 못한 채 불완전한 입법으로 머물게 되었다.
 
이에 편집규약제도가 처음 법제화된 오스트리아의 예에 비추어 그 제도의 의의 및 내용에 관하여 살펴보면서 앞으로 그 구체적 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알아보기로 한다.
 
오스트리아의 1974년 방송법기자의 자율성을 보호하는 방안으로서 기자는 그 저널리즘적 활동의 자유에 배치되는 바를 쓰거나 책임지도록 강요될 수 없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이를 거부한 자에게는 하등의 불이익을 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기자의 양심 및 확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방송공사의 경영 측과 편집 대표 간에 편집규약의 체결을 강제하고, 그 편집규약의 체결절차와 편집규약으로 협정할 내용, 기자그룹의 조직 및 대표 선출방법, 분쟁조정기구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위 법률에 의해 기자들은 그 확신에 반하는 일에 관하여 책임인수를 거부할 수 있으나, 그 정당성 여부는 기자에 대한 임무부여의 지시가 방송 편성규범에 비추어 기자직 임무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그러나 기자는 방송법상 객관성 의무 및 기타 프로그램 임무에 구속되므로 자기의 개인적 견해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위 프로그램 과업상의 임무이행을 거절할 수 없고, 그가 작성 또는 제작한 프로그램의 송출 여부나 시점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이 양심의 보호는 위와 같이 기자 자신의 확신에 반한 자신의 기사 작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할 뿐, 기자는 타인이 작성 저술한 내용이 자신의 확신에 반함을 이유로 그에 관한 업무를 거부하거나 그것이 편집 보도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기자의 양심의 자유가 보호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기자로 하여금 기사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은 방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상관의 지시가 기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되거나 완성한 기사에 대해 중대한 수정을 가하는 경우에는 먼저 관여 기자의 양해를 구하여야 하며, 양해를 얻지 못하면 그 기사는 송출이 보류되거나 관계기자는 수정된 기사에 대해 이유를 밝히고 그 책임을 거부할 수 있다(오스트리아 공영방송 편집규약 제3조).
 
여기서 기자의 양심에 반하는 작업지시가 거부될 수 있다고 하는 경우 양심이란 기자 개인의 원칙적 문제에 관한 확신(Überzeugung in grundsätzlichen Fragen)에 반하거나 저널리즘 직업의 원칙(Grundsätzen des journalistischen Berufes)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25) 따라서 개인의 임의적․편의적 사고에 반한다고 하여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5) 오스트리아 언론매체법 제2조 제1항, Hartmann-Rieder, aaO S. 43
 
개인의 원칙적 문제에 관한 확신이란 정치적․세계관적․도덕적․경제적․신앙적 또는 예술적 영역에서 주요한 원칙의 확실성과 그 실현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며, 단지 개인적인 추측이나 예측은 그에 속하지 않는다.
 
문제된 기사가 이러한 기본적 문제에 관한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예컨대, 기사에서 사형제도의 재도입 필요성을 주장할 것을 거부하거나, 외국의 정치적 위기에 관한 사실에 충실한 보도에서 한 정파의 개입 가능성에 관한 언급을 제거할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6)
 
26) Hartmann-Rieder, aaO S. 44f
 
저널리즘적 직업원칙에 반하는 경우로는 기사가, 예컨대 가벌적 내용을 포함하거나 가벌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진실성에 관하여 충분히 심사되지 않거나 일방적인 보도가 되는 경우 또는 주로 선정적인 동기에서, 이유 없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다루는 기사 또는 언론윤리에 위반되는 기사 등이다.
 
이상 편집규약 제도가 도입된 국가의 예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편집규약을 제정함에 있어서 유의할 점>은, 
 
*첫째 방송의 자유의 주체가 방송기관에 있고 방송운영책임자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 편집 간부의 편성 정책 결정권과 일반적인 지시권은 유지되고, 
 
구체적․개별적인 취재 및 제작에 임하는 방송 종사자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적 자유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도 
 
프로그램 책임자는 실무자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지시권(이른바 ‘테두리설정 권한’)을 가지며, 
 
사장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간부)은 
 
1) 어떠한 프로그램이 어떠한 내용으로 제작될 것인가, 
2) 어떠한 직원이 어떠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인가, 
3) 특정 방송물이 송출될 것인가의 여부 및 시점, 
4) 프로그램의 대상과 길이, 
5) 프로그램 제작직원간의 업무분배, 
6) 프로그램제작을 위한 기술상 행정상의 인력 및 지원수단의 배정 등 
 
일반적인 사항에 관하여 결정권을 갖는다.
 
그에 반하여 
 
개개 프로그램의 내용적 형성에 관하여는 
프로그램 제작직원에게 자유로운 역할이 보장되며, 
 
위 결정된 바에 따라 
 
1) 수집할 자료의 종류와 범위, 
2) 수집된 자료에 대한 의미의 판단, 
3) 개개 기사의 전체적인 연관 속의 사실평가, 
4) 화면선택, 
5) 인터뷰상대의 선정 등의 사항은 
 
직원이 저널리즘의 전문적인 기준에 따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 역시 수집된 사실관계에 비추어 최선의 양심과 지식에 따라 다루어야 할 구속적인 자유이며 법적인 편성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27) 
 
27) 그밖에 상세한 내용에 관하여는 朴容相, 放送法制論, 교보문고 (1988), 109면 이하 참조
 
이 경우 방송사의 집행간부와 편성직원이 프로그램의 편성 및 제작에 있어서 편성규범의 적용에 관하여 이견이 생기는 경우 양 집단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편성규범을 실천적으로 준수하기 위한 제도가 편성규약제도인 것이다. 28)
 
28) 박용상, 편집권의 법적 조명, 헌법논총 제12집 (2001, 헌법재판소), 192면 이하 및 박용상, 표현의 자유, 현암사 (2002), 835면 이하 참조
 
*둘째, 편성규약의 제정 주체 및 절차에 관한 규정이 필요하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사업자가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제정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보다 구체화하여 편집 부문 종사자의 범위 및 그 조직과 대표자의 선출 방법 등을 명시하여야 할 것이다.
 
현행 방송법 상 취재․제작 종사자라 함은 방송의 내용 형성에 정신적으로 관여하는 직원 일체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며, 그 의견을 듣는 방법은 그들 모두를 구성원으로 하는 총회를 소집하여 그들의 단체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의견을 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편성규약의 주요 내용으로서는 편성에 관한 제반 지침의 확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에 관하여 간부와 일선 실무자간에 의견의 대립이 있는 경우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정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원래 편성규약제도는 프로그램의 형성 및 편성에 있어서 상급자와 기자간에 프로그램 원칙에 관한 견해가 다를 때 위계제적인 의사결정의 체계에 대해 제한을 가한 것으로서 상급자와 기자 간의 이견을 조정할 장치를 두어 프로그램원칙의 실현을 실효화하는 데 그 제도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분쟁해결제도로서 실정화된 예를 보면 위에서 본 오스트리아의 방송법상의 편집규약에서는 방송사 외부의 중재기관으로서 사법권의 판단에 위임하는 체제를 취하고 있고, 독일 공영방송에서는 방송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서 방송참의회가 이를 행하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